밀 엔드 텍스타일스와 나의 커텐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 아…너무 기뻐서 어쩔줄 모르겠더라. 6개월 마다 이사다니던 아파트 생활 10년째 (우리 서방은 방랑벽이 있는 사람인지 한곳에 느긋하게 살질 못하는 사람이라, 처음으로 1년 넘게 산 아파트에선 혼자 무지 지겨워 하고 답답해 하더니 3개월 마다 가구를 옮겨서 나를 분개 시키더라. 왜냐구? 혼자 안하고 나도 부려 먹으니 글치…그것도 모자라 가구 옮기면서 그 뒤쪽에 쌓여 있는 먼지를 보면서 잔소리나 해대고..칫, 털면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어딨어? 앗..이말은 이럴때 쓰는게 아니던가?), 드디어 진득히 눌러살수 있는 내 ‘집’이 생긴거다. 임신 초기였지만 남다르게 부른 배를 안고 추운 겨울, 2002년 1월 26일 이사했다. 텅빈집, 그치만 내집, 구석구석 둘러 보면서 감격 했고 부른 내배를 어루만지며 태어날 아기에게 자랑 스러웠다.

이사하자 마자 나는 집 꾸미기에 몰두…하고 싶었지만 무리해서 산 집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금전적으로 넉넉하진 않았고 그렇다고 블라인드같은걸로 꾸며서 아파트와 같이 해놓고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본 결과 마루와 방에 제대로된 커텐을 달려면 적어도 800불에서 1000불 가량 든다는걸 알고는 무척이나 실망 했었었다. 그러든중 알게된 솜씨좋은 한국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천을 떠다가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 달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나는 시중에 파는 커텐을 살수도 없었던게 마루의 두 창문이 보통 규격 사이즈보다 훨씬 길어서 마춤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도 했다. 게다가 천이 맘에 들면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고 스타일이 맘에 들면 천 재질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종류라 결심하기가 더 수월했던것 같다.

이런 재료를 파는 조안, 마이클스, 월마트를 다녀 보니 천값도 만만치 않았고 바느질 삯까지 감안 하면 800불 못지 않게 들게 생겨서 또 고민 하던중, 천을 싸게 파는 가게를 알게 되었는데, 잘만 고르면 다른 가게의 반값정도에 살수도 있게 된것이다. 이 가게는 Mill End Textiles 라는 번스빌에 있는 굉장히 작고 돗대기 시장처럼 정신이 없는 곳인데 거기에 일하시는 분들이 아주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기도 해서 나는 아주 좋아한다. 아뭏튼 그곳에서 나는 천을 사다가 (앞에서 언급했던 한국 아주머니께서 창문의 치수를 재서 드리면 얼마정도 사라고 가르쳐 주셨다) 아주머니께 맞겨서 거의 반값 가량으로 내집의 커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걸어 놓고 나니, 신랑은 한다는 소리가 “마누라야, 니눈은 이것 밖에 안돼냐?” 라면서 내속을 긁었지만 나랑 내딸은 무지 좋아한다. 제눈에 안경이라고 내맘에만 들면 되지 않냔 말이다. 내딸은 이 칙칙한 초록을 가장한 누리끼리한색과 거기에 한들한들 그려져 있는 나무 잎사귀를 광신적으로 좋아 한단 말이다. 나도 다른집에 가서 보면 산뜻하고 깔끔한 천으로 꾸민걸 보고 이쁘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내커텐이 더 좋다. 적당히 우중충하니 마음도 가라 않고…히히, 이건 핑게고 때가 잘 타지 않으니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겐 왔따란 말이지, 헹…

Mill End Textiles 은 13번과 클리프 사이에 있는데 거기에 메일링 리스트에 올려 놓으면 1년에 4번정도 쿠폰을 보내준다. 다음에 우리딸 방 꾸밀때는 꼭 쿠폰 써먹어야지…아뭏튼 내생각엔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시중에 파는것들 중에서 못찾거나 조금 더 싸게 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손수 할만큼 손재주가 있는 주부에겐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나는 학교 가사 시간 과제물도 일하는 사람 시켜서 했을 정도로 솜씨도 없을 뿐더러 관심도 없었지만 이래저래 닥치니까 해결 방법이 생겼으니 주변에서 조언해 주신분들과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신 아주머니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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