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품과 나의 바람떡

미네소타에 처음으로 이사 와서 쿤래피드에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제일 가까운 한인 마켓이 서울식품이었다. 앗…나는 가깝지 않으면 아무데도 안가는 진정한 게으름팅이 였던가…? 하지만 서울 식품에 가서 깔끔한 가게와, 많은 종류의 물건들 (아이오와에서 온 촌뜨기에게는 그렇게 보였었다), 친절한 주인 아줌마, 그리고 반갑기 그지 없는 한국 비데오들…

나는 거기서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바람떡. 말캉말캉, 봉긋한 바람떡! 한국에 있을땐 주식이 떡이였을 정도로 떡을 좋아했고, 이사를 갈때에도 부모님께서 떡방앗간과 집까지의 거리를 감안할정도로 떡이 없으면 못사는 몸(?)이었고, 남들 다 싫어하는 대학입시도 찹살떡 실컷먹을수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걸 이해했던 나였기에 미국에서의 가난한 유학생활은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바람떡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편이었지만 오랜시간의 굶주림(?)은 나의 이성을 흐려놓았고 나는 그자리에서 한보따리 사서 집에오는 차안에서 바람떡을 까먹는 추태를 보이고야 만것이다. 왜 떡을 먹는게 추태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한국 아니면 미국이라도 큰도시에 사는게 틀림이 없다. 미네소타같은 준대도시의 바람떡은 냉동상태로 팔리는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여, 복받은곳에 살고 있음에 감사드리쇼.

아이오와에도 한인마켓이 있다. 내가 있던곳에는 단 한군데 뿐이 었는데, 베트남 주인 아줌마가 무뚝뚝 하기도 하고 거의 독점이다 시피해서 그런지 물건들도 시원찮은데 비해 가격은 만만치 않고 해서 꼭 필요한것이 아니면 거의 가질 않았었더랬는데, 서울 식품에 와서 보니 떡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떡보’인 내눈에 화락 들어온 바람떡은 나의 혼을 홀딱 빼가기에 충분 했던 것이다. 그때를 같이하여 한때 핫했던 드라마 ‘토마토’까지 나를 매주 목요일만 되면 서울 식품으로 달려가게 했던 것이다. 토마토는 수요일 들어와서 목요일에 비데오로 탄생되어 나를 그리도 기쁘게 했었다.

그렇게 시작해 가기 시작한 서울식품과의 인연은 아직도 계속 되어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갔었는데 근래에 와선 한달에 한번도 못갈만큼 바빠져서 우리 식구들 거의 인스탄트로 때우자 우리 신랑은 한다는 소리가 “마누라야, 우리도 사람 먹는것 좀 먹고 살자”란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서울식품 주인 아저씨께서 주시는 공짜 음료수 홀짝거리면서(서울 식품 주인 아저씨께서는 거의 모든 손님들에게 공짜 음료수를 주시는 걸로 유명하시다) 애기먹일 군것질 거리도 사고, 서방 좋아하는 오뎅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떡도 잔뜩 사고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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